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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딸에게 당부하다

(…)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 부분       K장녀라는 말을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K장녀란 K팝, K방역과 같이 한국(korea)과 장녀의 합성 신조어다. 가정에서 책임감을 강요받는 장녀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이런 신조어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유교문화권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그늘이 깊고 그 그늘의 후유증도 퍽 많은 것 같다.     딸들이 특히 장녀들이 희생양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60~70년대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의 장녀라면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동생들을 공부시키거나 집안 경제를 돕기 위해 일찌감치 산업전선으로 내몰렸다. 딸들은 돈을 벌어 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부모에게 송아지를 사주기도 하며 가난을 극복하는데 한몫을 했다.   산업역군이 된 언니·누나들은 자신의 삶보다 가족을 우선했고 그 숙명적 의무를 마다치 않았다. 남동생의 대학공부를 위해 자신의 학업을 기꺼이 포기하는 희생은 자발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높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깨지지 않는 유리 천정은 있을지언정 딸이라고 해서 가정 안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때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정작 이 시대를 사는 장녀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그녀들의 고충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은 꽤 괜찮은 말 같지만 사실 허울 좋은 굴레 씌우기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스스로를 K장녀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내 친구 K장녀들은 거의 비혼이다. 한 친구는 혼자된 아버지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도 2년째 병상의 엄마를 보살피는 24시간 간병인이 됐다. 남동생 부부와 아버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와의 감정이입이 가장 잘되고 엄마가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살림 밑천이라는 속내는 굴레 씌우기다. K장녀는 여성에게만 대물림한 희생의 역사를 말하는 눈물 나는 표현이다. 거기엔 아무 보상도 위로도 없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장남의 무게감도 크다. 그러나 장남은 남자라는 이유로 누리는 혜택이 많았다. 반면 장녀는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돌봄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K장녀라는 말은 그 반작용의 결과로 여자들 스스로의 처지를 되짚어보자는 의도로 생겨난 말 아닌가 싶다.   삼 남매 맏이인 내 큰딸을 생각해본다. 직장 일을 하며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큰딸에게 부모와 두 동생은 어떤 부담을 주는 존재들일까. 아마도 나이 들어가는 부모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걱정거리이겠고 집안의 경조사를 두루 챙겨야 하는 건 분명 짐 같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부모의 기대치에 준하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전사처럼 살아가는 내 딸, 장녀라는 무게에 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어떤 이유로도 날개가 꺾여서는 안 된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가족애라는 명분으로 차별적 희생이 요구되는 일은 이제 없어야겠다. 장녀로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니잖은가.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당부 친구 k장녀들 반면 장녀 남동생 부부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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